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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페이지 어린시절 부터 초기 세션 맨, 야드버드 시절까지

깁슨 레스폴, SG 더블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타플레이어 지미 페이지. 아마도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많이 들어 보셨을 인물일텐데요. 사실 이는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라 음악을 좋아 하는 팬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 붙인 순위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미 페이지가 기타 키즈들에게 끼친 영향이나 작품들을 보면 그런 칭호를 얻어도 별 이견은 없을 겁니다. 지미페이지는 60~70년대 록의 최전성기를 이끈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현재까지 기타를 배우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죠.



지미 페이지



지미페이지는 1944년 1월 9일 생으로 밴드 '레드 제플린'의 리더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깁슨 레스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기도 하고 영국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죠.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연주자들을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기도 합니다.






지미페이지는 1944년 1월 9일 공장의 인사 담당자였던 '제임스 패트릭 페이지 시니어'와, 의사의 비서였던 '패트리샤 페이지' 사이에서 영국의 미들섹스에 위치한 허스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외동아들이라 그런지 어렸을 때 성격은 내성적이면서도 재치있는 성격이었다고 하죠.



지미 페이지

▲ 어린 시절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모습


지미 페이지가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Baby Let's Play House'라는 곡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형들이 하던 스키플 밴드에 들어갔으며 13~14살 경에는 BBC의 Huw Wheldon's All Your Own talent라는 일반인 장기자랑 프로에 밴드와 함께 출연 하기도 하죠.



▲ 당시 티비쇼 출연 영상


이후 지미 헨드릭스는 전문 뮤지션을 꿈꾸면서 1960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로이스턴 엘리스, 닐 크리스챤 등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 나이 부터 세션 맨으로 활동했다는 건 꽤나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1962년 림프선 선열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음악일을 그만 두고 고향집으로 내려갑니다. 고향으로 내려간 후 근처의 2년제 예술전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휴식기를 갖는데요. 건강을 되찾은 1963년경부터는 다시 음악계로 돌아와 전문 세션 기타플레이어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미 페이지



이렇게 지미페이지가 세션 기타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웬만큼 실력 있는 기타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밴드에 소속되어 있던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지미페이지는 영국 세션 기타리스트 중에서는 빅 짐 설리반과 함께 단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고 하죠.



지미 페이지



이 시기에 지미페이지는 로큰롤 뿐만 아니라 엘모어 제임스, B.B. 킹, 오티스 러쉬, 프레디 킹, 머디 워터스 등의 블루스 음악과 포크음악에도 심취하였으며, 제프 벡, 에릭 클랩튼 등의 뮤지션들과도 친분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1966년 역사적인 밴드 '야드버즈'에 가입하게 되는데요. 야드버즈는 한국에서 알려진 3대 기타리스트들이 모두 거쳐간 밴드입니다. 1기는 에릭 클랩튼이었고 지미 페이지가 후임으로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제프 벡을 추천해 제프 벡이 먼저 야드버즈에 합류하게 됩니다.



지미 페이지



이후 제프 백의 요청으로 지미 페이지도 가입하게 되는데요. 가입 초기에는 당시 리듬기타를 맡고 있던 크리스 드레자가 베이스에 익숙해질 때까지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프 벡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함께 트윈 기타를 연주하게 되죠. 



지미 페이지



참고로 한국에서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인물은 에릭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입니다. 에릭 클랩튼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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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초기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