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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Ti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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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밴드 이후 솔로 활동 에링 클랩튼은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크림', '블라인드 페이스', '데릭 앤 더 도미노스' 를 마지막으로 밴드 활동을 접고 솔로 활동을 이어갑니다. 에릭 클랩튼의 밴드 '블라인드 페이스'와 '데릭 앤 더 도미노스' 솔로 활동으로 변화된 음악 스타일솔로 활동에서 에릭 클랩튼은 비트는 많이 줄이고 섬세한 기타연주를 강조하는 사운드를 추구하게 되는데요. 그의 솔로시절 대표곡으로는 밥 말리의 레게 곡 리메이크인 'I Shot The Sheriff', 옛날 서울의 달이란 MBC 드라마로 유명해진 'Give Me Strength', 아름다운 발라드 'Let It Grow', 레게풍의 가스펠 리메이크곡 'Swing Low Sweet Chariot', 마약 이름이라 논란이 있었던 'Cocaine', ..
에이미 와인하우스 사망 원인, 27세 클럽은? 27이라는 숫자는 세계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저주의 숫자라고 여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7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27살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으로는 로버트 존슨, 브라이언 존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가르켜 'Forever 27 Club' 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27세 클럽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인데요.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블루스와 재즈의 천재로 칭송받은 뮤지션이었던 반면, 폭력적인 성향과 알코올, 약물 중독으로 뉴스 사회면을 장식했던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생전에 점점 약물 중독으로 발작을 일으키고 건강이 악화될 때 마다 에이..
커트 코베인 자살일까? 타살일까? 1994년 4월 8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마을에 무인 경비 회사 직원이 보안등을 달기 위해 마을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집안의 창문을 통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본 것은 이층 방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이 사체였는데요. 조사 결과 이 사체는 록밴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었습니다. 밴드 '너바나'의 보컬이자 기타였던 커트 코베인은 90년대 전 세계 록음악의 흐름을 바꾼 최후의 록 아이콘이었죠. 하지만 커트 코베인은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안타깝게도 데뷔 전부터 오랜 시간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또 평소 우울증까지 앓아 왔다고. 커트 코베인은 자택에서 유서와 함께 숨진 지 3일이 지난 뒤에 발견됐는데요. 시에틀 경찰은 커..
히데 죽음 일본에서 '베르테르 효과' 불러 오다 1998년 5월 7일 유난히 더웠던 일본 도쿄. 당시 도쿄에는 일본 전역에서 몰려온 약 5만 명의 소년소녀들이 '사요나라'라고 외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엑스제펜(X JAPAN) 멤버 히데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이었는데요. 히데는 엑스 제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멤버였는데요. 당시 한국에 일본 문화가 들어 오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엑스제펜은 한국에서 굉장히 인지도 높은 밴드였습니다. 히데의 사망 소식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엑스제펜은 1982년도에 결성된 5인조 록밴드로 'Tears', 'Say Anything', 'Endless Rain'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가장 사랑 ..
오아시스 떼창, 외국 가수들이 한국 공연에 환장하는 이유 전 세계 투어를 하는 밴드나 가수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그냥 일본에 온 김에 들르는 곳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국 가수들이 한국 공연문화의 맛을 들이게 되면 다시 찾고 싶은 나라 일순위가 되죠. 사실 한국 음악 시장은 외국 뮤지션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시장이 아닙니다. 음반 판매량을 보더라도 한국에서 자신들의 인지도가 어느정도인지 파악하기도 힘들 뿐더러 한국을 잘 모르는 가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 공연을 마치고 돌아간 뮤지션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한국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극찬합니다. 특히 오아시스의 방송 인터뷰는 굉장히 유명하기도 하죠. 이는 오아시스 뿐만 아닙니다. 에미넴은 일본에서 관객들의 반응에 뚜껑이 열린 상태에서 한국 공연 후 한국 관객들에게 푹 빠지기도 했습니다. 후..
에릭 클랩튼의 밴드 '블라인드 페이스'와 '데릭 앤 더 도미노스' 에릭 클랩튼과 멤버들의 의견 차이는 결국 수퍼밴드 '크림'의 해체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후 에릭 클랩튼은 또다른 수퍼밴드 블라인드 페이스를 결성하게 되는데요. 에릭클랩튼 최초의 록 수퍼밴드 '크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는 크림시절의 진저 베이커와 트래픽의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스티브 윈우드, 바이올린과 베이스 주자 릭 그레치가 참여해 만들어집니다. 이 밴드에서 에릭 클랩튼은 스티브 윈우드의 음악성에 경의를 표하고 밴드의 주도권과 보컬을 넘겨줍니다. 때문에 '블라인드 페이스' 시절의 음악은 스티브 윈우드의 영향으로 인해 굉장히 단아하고 정돈된, 그야말로 고상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들의 음악은 스티브 윈우드의 전신 밴드였던 트래픽의 음악이 연주적으로 더 알..
에릭클랩튼 최초의 록 수퍼밴드 '크림' 이글은 이전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글은 아래의 링크를 확인하세요. 에릭 클랩튼 초기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시절 에릭 클랩튼은 야드버즈와 블루스 브레이커스를 거처 최초의 록 수퍼밴드라고 평가받는 크림을 결성하게 됩니다. 1966년 결성된 '크림(Cream)'은 데뷔 음반 《Fresh Cream》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요.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같은 해 2집 《Disraeli Gears》를 발표하여 즉흥 연주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게 됩니다. 크림은 에릭 클랩튼 이외에도 최고의 연주실력을 가진 잭 브루스(베이스), 진저 베이커(드럼)가 멤버로 있던 밴드로 락 역사상 최초의 수퍼밴드로 얘기되는 밴드입니다. 또한 3명의 멤버가 기타 - 베이스 ..
에릭 클랩튼 초기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시절 오늘은 에릭 클랩튼의 초창기 밴드였던 야드버즈와 블루스 브레이커스 시절 일화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전체적인 프로필과 근황은 아래의 글을 참고 하세요. 이전글: 에릭 클랩튼 프로필 및 최근 근황 살펴 보기 에릭 클랩튼은 어린 시절 시카고 블루스와 비비킹, 머디 워터스 등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영향을 받아 기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3년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에 가입하죠. 하지만 이때 블루스 밴드였던 야드버즈가 본격적으로 팝 밴드로 노선을 바꾸려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블루스에서 팝 밴드로 변신을 시도했던 곡이 For Your Love였는데요. 블루스 음악인으로의 자각이 컸던 에릭 클랩튼은 밴드의 방향 전환에 크게 갈등하게 되고 야드버즈에서 탈퇴 당하게 됩니다. 이후..